여섯 개의 시선(If You Were Me, 2003)

2008. 11. 27. 11:54Movies


 

<여섯 개의 시선>이라는 이름을 보고 순간 뇌리를 스치는 무언가가 있었다. 요즘은 자주 영화를 보지는 못하지만 그동안 보면서 모아두었던 영화 포스터가 떠오른 것이다. <여섯 개의 시선>이라고 적혀있고 수트를 입고 있는 감독들이 각자의 포즈를 취하면서 앉아있는 모습은 그때에도 색다른 모습이라고 느껴서인지 오랫동안 기억에 각인되어 있었나보다. 이렇게 독특한 포스터에서 이 영화는 느껴지듯이 영화의 장르 또한 여러 개의 이어짐이 없는 내용을 이어서 만든 방식인 옴니버스 영화이다. 이러한 방식의 영화를 제작한 감독들 또한 하나하나가 작품성이 뛰어나고 개성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각각의 독립적인 영화들로 구성되어 이어지지는 않지만 이 영화들은 하나의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인권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그러나 당연시라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한번쯤 이야기하여 따끔하게 꼬집어 낼만한 것들을 각각의 감독들의 선택으로 하여 전개해 나간다. 인권도 주권을 지닌 자와 종속을 당하는 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 주체자는 종속을 당하는 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심지어 조정하기까지 한다. 그런 점들을 각각의 스타일로 해석해 가는 영화들로써 감독별로 비교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로는 임순례 감독의 <그녀의 무게>이다. 장소는 한 실업계고등학교, 그곳에서는 이미 외모 가꾸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성형수술은 기본이고 단식원에서의 10kg대의 몸무게 감량에 점심대신 다이어트 약을 섭취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예쁘게 변한 학생과 그에 반하여 뚱뚱하며 쌍꺼풀 없는 외모를 지닌 ‘선경‘ 학생의 모습이 대비되며 철저히 외모지상주의를 외치는 사회의 단면을 담고 있다. 여기서는 외모지상주의의 원인이 되는 사회의 실상까지 이야기 한다. 편의점에서의 파트타임직원을 고용하는데 있어서도 ‘선경‘ 학생의 외모를 보고 꺼려하던 편의점 사장은 준수한 외모를 지닌 한 대학생이 오자 바로 허락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면접에서의 질문도 철저한 외모위주의 질문으로 진행이 되는데 이는 우리 사회의 외모에 큰 점수를 부여한다는 의식을 약간의 코미디를 첨가하여 재구성 한 것이다. 외모의 기준을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으면 된다는 감독의 말을 보고 외모는 하나의 기준이 아닌 각 개인의 고유한 존재를 의미한다고 생각 하는 나의 의견과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두 번째로는 정재은 감독의 <그 남자의 사정>이다. 처음부터 미래의 체계화된 형태의 아파트를 보여주는 듯한 장면만으로도 사람냄새가 나지 않겠구나 하는 인상을 주었다. 이 영화는 한 성범죄자가 그가 행한 범죄로 인하여 달게 되는 꼬리표와 그로 인하여 지울 수 없는 편견을 받게 되는 것을 이야기 한다. 한 아파트에서 철저하게 무시를 당하는, 소위 말하여 왕따를 당하는 한 남자를 어떤 꼬마가 보게 된다. 꼬마의 엄마가 그 사람을 피하라고 하지만 꼬마가 오줌을 싸게 되어 소금을 얻던 도중에 그 남자의 집까지 가게 되는 이야기이다. 그 남자의 집 앞에 걸려있는 지문의 형상이 들어간 표시, 아파트의 곳곳에 적혀있는 극단적인 이기주의, 배타주의적인 문구들, 엘리베이터에서 구두를 닦으라는 절규 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람간의 관계를 더욱 소원하게 만들고 한 남자를 넘어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만들어버렸다. 무시되어야 마땅하다는 인권도 보호해야 아름다운 사회가 된다는 감독의 말을 보았다. 인간은 모두 같은 존재인데 무시되어야 할 마땅한 이유는 없다. 인간이 죄를 짓는다고 하여 그 사람에게 평생의 낙인을 찍게 한다면 그 사람은 살아도 죽은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는 박진표 감독의 <신비한 영어나라>이다. 이 영화는 홈 비디오 형식으로 한 아이(종우)가 영어유치원을 다니면서 연극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아이의 부모는 종우의 영어발음이 만족스럽지 않자 기어이 종우를 설소대 수술까지 시키기에 이른다. 이 영화는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내용은 없지만 미성년자의 관람을 제한해야 할 정도라고 생각한다. 설소대의 수술과정을 하나의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떠한 다큐멘터리에서도 볼 수 없는 영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직접 보게 되면서 한 아이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인권이 심하게 유린된다는 것을 보고 굉장히 그 부모를 비난하게 된다. 과연 그 아이에게 R과 L 발음이 혀를 자를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이것은 심각하게 생각해 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의 의사의 앞으로가 더 중요할 것이라는 말은 수술의 고통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말은 수술의 고통을 더욱 무의미 하게 만들어 마치 한 아이가 인간이 아닌 기계에 불과한 느낌을 주게 되었다. 자식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몹쓸 짓을 하는 부모와 이를 두고 자식의 인생을 미리 결정하는 오만함을 비판하는 감독의 말을 보았다. 여기서 보여준 부모는 자식을 위함이 지나쳐서 넘지 말아야 할 선 까지 넘어버린 것이다. 부모의 지나친 욕심으로 인한 자식의 인권을 짓밟아 버린다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인 것이다.


우연한기회에 보게된 영화이어서 그런지 더욱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마치 독립영화를 묶어놓은 듯한 옴니버스식의 영화여서 아쉽게도 전편을 다 보지 못하였다. 기회가 된다면 전편을 다 보고싶고 추천할 만한 영화이다.